로고 이미지

고정 헤더 영역

글 제목

메뉴 레이어

로고 이미지

메뉴 리스트

  • 홈
  • 태그
  • 방명록
  • 분류 전체보기 (166)
    • 세계사 이야기 (104)
    • 창업이야기 (3)
    • 기후변화 (59)

검색 레이어

로고 이미지

검색 영역

컨텐츠 검색

한국사

  • 세익스피어 시대! 조선은 임진왜란과 당쟁 혼돈 그 자체였다

    2025.04.25 by starshower1

  • 신라 첨성대와 세계 천문학의 대격돌

    2025.03.08 by starshower1

  • 신윤복과 김홍도 라이벌 설의 진실 밝혀보니

    2025.03.07 by starshower1

  • 한반도의 철기 저온기가 고대 사회를 뒤바꾸다

    2025.02.25 by starshower1

  • 정약용의 과학 혁신, 서양과 맞서다

    2025.02.24 by starshower1

  • 대동여지도 제작 당시 동서양의 극명한 대조, 19세기 중국의 몰락과 유럽의 부상

    2025.02.19 by starshower1

  • 한글 창제 당시 세계는 어땠나? 중국은 번영, 유럽은 변혁기

    2025.02.18 by starshower1

  • 페르시아왕자와 신라와의 관계 황남대릉원 금관서 드러나다

    2025.02.17 by starshower1

세익스피어 시대! 조선은 임진왜란과 당쟁 혼돈 그 자체였다

세익스피어의 시대,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1592년, 영국에서는 세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던 시기. 같은 시기,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전쟁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세계는 얼마나 달랐을까요? 세계 양극단의 두 문명: 영국과 조선의 시대적 공존세익스피어(1564-1616)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집필하던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세익스피어가 글을 쓸 당시 조선의 모습은 전쟁의 고통과 혼란이 지배하던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였습니다.임진왜란과 정치적 혼란의 시대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군이 부산에 상륙하며 시작된 임진왜란은 조선 사회를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국왕 선조는 수도를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떠났으며, 백성들..

세계사 이야기 2025. 4. 25. 22:20

신라 첨성대와 세계 천문학의 대격돌

1. 별과 인간의 만남: 첨성대의 비밀과 동서양 천문학 비교신라의 첨성대는 단순한 유적이 아닙니다. 이 석조 건축물이 천문학적 관측과 농경사회의 핵심 역할을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경주 도심에 우뚝 서 있는 첨성대는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천문대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인들의 과학적 지혜가 깃든 문화유산입니다. 7세기 중반 선덕여왕 시기에 건립된 이 구조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였습니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

세계사 이야기 2025. 3. 8. 16:23

신윤복과 김홍도 라이벌 설의 진실 밝혀보니

라이벌이었을까? 신윤복과 김홍도의 흥미로운 이야기의 서막조선 후기의 두 거장, 신윤복과 김홍도. 그들은 서로 경쟁하는 라이벌이었을까요, 아니면 각자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동반자였을까요? 조선의 신윤복과 김홍도는 라이벌이였나? 이 질문은 미술사 애호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두 거장의 시대적 배경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조선 정조와 순조 시대를 배경으로 신윤복(1758년경-1813년 이후)과 김홍도(1745-1806년경)는 각각 독특한 화풍으로 조선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김홍도가 신윤복보다 약 13년 먼저 태어났다는 점은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예술적 스타일의 대비두 화가의 작품 세계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김홍도는:서민들의 ..

세계사 이야기 2025. 3. 7. 14:27

한반도의 철기 저온기가 고대 사회를 뒤바꾸다

서릿발 속 새벽: 철기 저온기의 시작과 한반도의 대전환기원전 300년경, 한반도의 기온이 갑작스레 1~2℃ 낮아지며 역사의 새 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철기 저온기'는 단순한 기후 변화를 넘어 우리 선조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 대전환의 시작이었습니다. 기후 데이터로 보는 철기 저온기평균 기온: 현재 대비 1~2℃ 하락영향 기간: 기원전 300년 ~ 서기 100년 (약 400년)강수량: 연간 200mm 이상 감소서리 일수: 연간 20일 이상 증가환경 변화의 증거들퇴적물 분석 결과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전역에서 한랭 기후를 나타내는 식물 화석이 급증했습니다. 특히 강원도 횡성 유적지에서 발견된 꽃가루 화석은 이 시기의 추운 기후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사회적 변화의 시작철기 저온기는 농경 사회에 큰 ..

기후변화 2025. 2. 25. 08:57

정약용의 과학 혁신, 서양과 맞서다

정약용의 기중기: 조선 시대의 혁신적인 농업 기술농업 혁명을 꿈꾸던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 그가 설계한 기중기, 이 단순한 도구가 어떻게 농업의 전환점을 만들었을까요? 정약용(1762-1836) 시대의 서양 과학 현황은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약용은 서양 과학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조선 사회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기중기의 혁신성과 과학적 원리정약용이 설계한 기중기는 당시 조선의 농업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수력을 이용해 물을 끌어올리는 이 장치는 지레의 원리를 활용하여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연구 데이터에 따르면:기존 인력 관개 방식 대비 물 공급량 300% 증가노동력 투입 50% ..

세계사 이야기 2025. 2. 24. 09:59

대동여지도 제작 당시 동서양의 극명한 대조, 19세기 중국의 몰락과 유럽의 부상

2025년 2월  18일 서울옥션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김정호의 목판 지도 '대동여지도'가 3억 2천만원에 낙찰 되었다합니다.원래 10억원 정도는 기대 했지만 좀 아쉽습니다. 이 대동여지도는 1861년 신유년에 제작된 것으로 22첩으로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로 20Cm, 세로 30Cm의 목판 총 126면 이어 붙였으며, 1개의 목판(20cmx30cm)은  80리 x 120리 의 비율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처음 발행되고, 1864년에 다시 간행된 조선의 전국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2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의 지리적 정보를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김정호는 이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당시의 지리적 자료와 정부의 지도들을 참고하였고, 이는 그의 지도 제작에 큰 영향을..

세계사 이야기 2025. 2. 19. 09:33

한글 창제 당시 세계는 어땠나? 중국은 번영, 유럽은 변혁기

글자가 아닌 혁명: 한글 창제의 시작과 15세기 세계정세15세기 중반, 세종대왕은 새로운 문자 체계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자 창제가 아닌, 당시 세계 정세와 맞물린 혁명적인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시대를 관통하는 창조: 한글의 탄생 443년에 얽힌 국제적 배경 15세기 중반, 세종대왕은 동아시아를 넘어 인류의 문화사에 길이 남을 혁신을 이루어냈습니다. 한글 창제의 순간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볼까요?세계사적 맥락에서 본 한글 창제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1443년, 세계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가 정통제의 통치 아래 안정기를 맞이했고,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1443년 주요 지표 비교:인구: 중국 1억 2천만, 유럽 5천만, 조선..

세계사 이야기 2025. 2. 18. 13:22

페르시아왕자와 신라와의 관계 황남대릉원 금관서 드러나다

신비로운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의 연결고리: 고대 문명의 미스터리실크로드를 따라 펼쳐진 동서양의 교류는 수많은 미스터리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와의 관계는 가장 흥미로운 수수께끼 중 하나입니다. 고고학적 증거로 보는 페르시아-신라 교류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특히 금관의 제작 기법과 문양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것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연구 데이터에 따르면:신라 금관 문양의 35%가 페르시아 양식과 일치출토된 유리구슬의 40%가 페르시아산으로 추정신라 왕실 무덤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물품: 약 200여 점역사적 기록에 나타난 왕실 교류의 흔적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와 서역의 교류를 암시하는 기록이 scattered되어 있습니다. 특히 진평왕..

세계사 이야기 2025. 2. 17. 13:33

추가 정보

인기글

최신글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반응형
250x250

페이징

이전
1 2
다음
starshower
Lazy reporter ©Lazyreporter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투브 메일

티스토리툴바